마흔을 바라보는 여성의 홀로서기. 한 번의 사랑에서의 실패(이혼)을 겪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여정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이다. 헐리우드식의 화려함은 없지만 일상을 소박하게 보여주는 잔잔한 영상이 보고나서도 곱씹어볼 부분들을 남긴다. 영화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고독과 갈등, 완전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을 보여준다.
영화는 화려한 부모를 가졌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 마흔의 여성의 삶에 대해 담백하게 말한다. 물론 영화에서의 싱글맘은 화려한 저택에 지내고 주기적으로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주위에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부모가 있다. 그렇더라도 그녀가 가진 사회적인 틀, 나이, 경력, 직업, 결혼에 대한 관념은 똑같이 적용된다. 그녀는 스스로가 젊은 남자와 사랑을 하기엔 자신감이 없다고 여기고, 아이들을 챙기다보니 생긴 습관적인 '엄마모드'는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까봐 걱정이 된다. 자신도 즐겁고 재미나게 하루하루를 ㅡ 그렇게 살다가 죽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ㅡ 살고 싶지만 '철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신을 주춤하게 만든다. '철 없이' 살다간 아버지는 죽어서도 젊은 예술가들의 추앙
을 받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면 추해보일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단 한번의 '비참한 기다림' 앞에서 단호하게 이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흔의 여성은 성숙해지지만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는 비참함을 재빨리 거부한다. 그들은 무엇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아주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그곳에 자신을 던져넣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녀들은 남자친구를 기다렸고 남편을 기다리며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다림의 끝은 언제나 비참함으로 결론이 났다. 그 과정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앨리스는 젊은 남자친구(해리)의 행동을 한 번만 보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난 내 감정이 어땠는지가 중요해요.
고작 어제 일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죠?
뭘 그만둬요?
우리 둘 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나한테 친구로 지내자고 할 땐 언제고 갑자기 나타나서 찬장을 고쳐주더니 나한테 키스했잖아요.
됐어요. 다 내 탓이지. 어차피 언젠가는 끝내야 할 관계고 지금이 그때예요.
해리 당신은 겨우 27살이에요. 젊으니까 뭐든 재밌고 신나겠죠. 마치 자기가 어른인 것 같고요.
근데 27살짜리가 뭘 알겠어요? 하는 것마다 실수투성이지.
나도 그랬거든요. 나한테 가장 끔찍한 일은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앉아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거라고요.
우리가 어떤 사이였든 여기서 끝내요. 알았어요?
내 말대로 해요. 왜냐하면 내가 잘 아니까.
*
27살의 남자친구는 무엇이 중요한지 여전히 잘 모른다. 그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주 많으며 그것을 위해 여자친구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여자친구들은 그 기다림의 끝의 결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기다린다. 불행이 끝날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면서.
그렇게 기다려온 여자들은 이제 마흔이 되어서는 단호해진다.
삶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꾸리더라도 시간이 한없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들은 안다. 그래서 그것을 아는 사람과 함께 하길 원한다. 그녀들은 여전히 사랑을 원하고 행복을 꿈꾸고 자신만의 멋진 남자친구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그것보다 더 강력한 현실이 그녀들을 기다린다.
한 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사회에 대두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의 서른은 '모든 것을 아는 어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 있었던 것 같다. 파고드는 감성으로 노래하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서른이 되면 모든 것에 감정적 치우침이 없어지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홀로서기가 완전히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더 이상 부침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또 서른이 되어 자살한 '천재작가'라고 불린 '전혜린'의 삶도 여기에 한 몫 했다.
그런데 서른을 넘긴 어느 날, 나는 완전히 실패의 더미속에 묻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서른이 무서워서 안정을 찾아떠난 친구들도 많았고 다시 실패해서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서른 즈음에,는 삶을 돌아보며 회상에 잠길 때가 아니라, 완전히 자신이라 생각한 정체성이 무너지고 새롭게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의학 기술과 넘치는 풍요 속에서 생의 시간이 길어지며 '늙음'의 길목이라 여겨지던 마흔이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제 마흔은 '늙은 이가 되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새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수 많은 마흔들이 '나는 여전히 새롭게 사랑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으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마흔'은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왜일까?
여성들의 삶은 어린 시절 기성 세대의 통제속에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다가 20대를 기점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무엇에든 '불안'해 해야하고 '두려움'에 떨어야한다. 그들은 모험을 위해 세상 밖을 나설 수 없으며 규칙을 깨고 나간 여성들 중에는 실제로 위험에 처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험에 처했던 여성에게는 오히려 빨간 딱지를 붙이는 세상의 관습이 그들을 더욱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현대의 20대 여성에게는 또 다른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자유롭기를 바라고 사랑에 빠지지만, 섣불리 사랑하고 섣불리 무언가를 집어들다가 낭패를 본다. 나쁜 남자에 데이고 실패하고 견딘다. 그리고 이는 현대식으로 바뀐 새로운 빨간 딱지가 되어 그들을 괴롭힌다. 여전히 그녀들의 부모는 옛 관념에 사로잡혀 그녀들에게 죄책감을 씌운다.
그들 중 몇 명은 30대가 넘어가며 자신이 선택한 것들이 완벽한 실패임을 깨닫게 되고 거기서 탈출하기를 원한다. 나머지는 순종하고 견디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실패임을 깨달은 무리 속에서 몇 명은 다시 일어나기위해 애를 쓰지만, 나머지는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흔이라는 나이는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에서 마흔은 삶을 다시 시작하기에 어쩌면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통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 많은 개념들이 생겨나는 것도 그래서일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흔을 새롭게 봐야한다. 더욱이 마흔의 여성, 마흔의 이혼한 여성, 마흔에 미혼모, 마흔의 홀로 자식을 키우는 여성, 마흔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려는 여성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고된 성적 통제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방종의 자유속에서도 자신을 굳건히 다져냈으며 결국 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사회와 가족의 유리천장을 깨고 세상 밖으로 온전히 나온 사람들이다.
개봉일: 2017년 (로스앤젤레스)
감독: 핼리 메이어스-샤이어
작곡가: 존 데브니
각본: 핼리 메이어스-샤이어
제작자: 낸시 마이어스, 이자벨 누루 데인, 에리카 올데
출연진
리즈 위더스푼 (앨리스 키니)
피코 알렉산더 (해리)
냇 울프 (테디)
마이클 신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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