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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플라눌라 planula 2021. 3. 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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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목표로 인한 파멸"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제목처럼 개츠비에 대한 존경을 담은 저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위대함의 목적이 잘못된 곳으로 향했을 때 삶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나 소설에 대해 일부만을 들었을 때는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이 조금 과도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위대한'은 두 군데를 지칭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바로 개츠비와 저자 자신이다. 

 

개츠비의 위대함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나는 저자가 더욱 위대하다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개츠비의 숨겨진 위대함을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인간의 위대함이 어디서 발현되고 어떻게 유지되고 지켜지는지를 알았으며, 희망에 가득찬 눈빛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개츠비를 만났고 그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며 어려움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잃지 않는 자신감과 야망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이며 지켜지기 어려운 지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화려함만을 보고 '대단하다'라고 치부하며 지나쳐버릴 무언가를 지켜보고 파멸되는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빛을 인지하는 것은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영화는 굉장히 복잡한 인간 내면, 특히나 감정적이 되는 남성의 특성이 가장 극단으로 치우칠 때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빠질 때 인간은 누구나 극단적이거나 감정적이 되는 경향이 있지만,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생긴다. 나는 이것을 '자신에게 없는 면을 환상적으로 인식하며 생기는 인지부조화'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없는 면을 환상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히 여성과 남성은 다른 부분을 소유하고자 하며, 욕망하고, 집착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보여주는 '개츠비'의 모습은 가장 평균적이고 야망적인 남성의 모습에 가깝고 개츠비가 욕망한 '데이지'는 가장 평균적이며 사치스러운 여성의 모습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둘은 닮았기에 서로에게 끌렸고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극단의 소유욕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1922년 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황금물질주의 시대에서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고려되었는지를 잘 그려준 영화다. 영화 속에서 캐츠비가 추구한 사랑과 성공은 그 시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된다. 경제력이 커지고 삶이 점점 부유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이런 경향이 짙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삶을 사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그들에게 사랑은 곧 물질이고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더 원하는 사랑을 얻는 것과 같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부유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개츠비. 일견 안타까웠던 점은 그가 자신에게 없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으며 그 목표가 잘못된 곳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

나 같은 사람이 사랑을 하는 건 큰 실수라는 걸 알았어

난 겨우 32살이고

데이지를 잊으면 아직 위대해질 수 있어

하지만, 친구 내 삶은 

저 별들처럼 되야 해. 

끝없이 올라가야 하지. 

 

*

 

개츠비의 말처럼 그가 '꿈'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을 쫓았다면 더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파멸하는 일도, 감정의 노예가 되어 흔들리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순간, 사람은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위대한 개츠비가 재미있는 점은 굉장히 남성적인 시각에서의 순정을 소설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위해 극단적인 부를 소유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그 부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기를 원했다는 대목에서, 저자는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물론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욕망은 정말로 데이지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개츠비가 '데이지'라는 '낭만적인 목표'를 추구했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철저히 자신만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파티를 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자신이 평생 갖추지 못할 부를 갖추고 대접받고 존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일. 그것은 사실 무의식적으로 개츠비가 추구한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강렬한 목표가 필요했을 것이고. 강렬한 목표가 되려면 쉽게 소유할 수 없어야 하고 또 물질처럼 너무 손쉽게 얻어지면 전투력이 떨어진다. '꿈'처럼 손에 쉽게 잡히지 않거나 '사람'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어야 목표는 강렬해진다. 

 

사실 개츠비 같은 야심을 지니고 파멸하는 인물은 생각보다 흔하다. 그 야망을 행동에 옮기고 그것이 완벽히 달성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걸어야 하겠지만, 야망과 희망, 사랑에 대한 집착적인 감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설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동안 그것은 위대해졌다. 그것을 위대하게 보아주고 그려주고 공감해주고 인정해준 저자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개츠비는 영원히 죽지 않고 소설 속에 살아 생존하는 것이다. 

 

나는 개츠비가 자신 안의 어떤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취하는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자신의 꿈을 이룰 여러가지 재능을 가졌으며 지치지 않는 에너지도 있었고 흔들리지 않는 심지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자수성가를 이룰만큼 대단한 요소를 지닌 사람이었는데 결국 그 모든 에너지를 '사람'에게 투사했다. 그가 데이지를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여자'에 대한 환상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일수록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별처럼 멀리 보이고 알 수 없고 수수께끼 같으므로 환상을 부여한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갖지 못한 '부'를 극단적으로 성취하길 원했고 15세에 집을 떠날만큼 그의 소망은 간절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던 만큼 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환상이라는 장치를 해놓아야 했다. 그것이 처음에는 '별'이었고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별이 어느 순간에는 '데이지'가 된 것이다. 

 

개츠비는 극단적이었고 데이지의 남편은 비열했다.

 

아마도 어느쪽을 선택해도 데이지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말해주듯 순정적이지만 극단적인 사람과 비열하지만 안정을 제공해주는 사람 중 결국 데이지는 비열하지만 안정적인 사람을 선택했다. 감정적으로는 순정적이고 극단적인 사람에게 한 표를 주고 싶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환상을 심어놓고 타인을 별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데이지가 현실이 된다면, 그 별은 지는 것과 같다. 언제나 반짝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별이 필요한 야망 넘치는 사람에게 그것은 악몽이 된다. 개츠비는 그것을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파멸한 길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개츠비는 무언가를 해야하는 사람일 뿐이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그것을 어딘가에 쏟아부어야 하고 그것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면에서 개츠비는 부자가 되길 원했고 부자가 되었지만, 나는 그가 예술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면의 예술적인 면모를 가감없이 발휘하며 자신의 환상을 어딘가에 심어두고 성취하기를 바랐다. 그는 현실적인 부를 성취하는 장면에서도 예술적인 면모를 잊지 않았다. 그에게 현실은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고 꿈과 환상의 세계처럼 쫓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수단은 중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이루어 낼 예술적인 장면만이 중요했다. 그 예술의 정점에 '데이지'가 있었다. 데이지라는 꽃이 그의 삶에 내려앉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수 많은 예술가들이 '뮤즈'라고 칭하며 여성을 이런 장면에 놓아두었다. 그 뮤즈는 때가 되면 지고 결국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더 이상 기능하지 않으면 다른 뮤즈가 필요할 뿐이다. 그가 데이지를 뮤즈로 성취하기를 원하지 않고, 진정 사랑하는 법을 알았다면, 세상에 이로운 어떤 것을 성취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아마도 더 '위대한 개츠비'가 되는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한 사람과 소통하며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아닌, 가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랑은 꿈처럼 쫓으며 환상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편안해야하고 아름다우며 지속적이고 평화로워야 한다. 갖지 못해 안달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해도 만족하는 것이어야 한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주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함께 하며 서로 공유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목표물'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개츠비의 '위대한' 덕목을 기억해준 이가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또 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 가끔씩 그의 열정과 순수함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 안에 있던 열망을 일깨워주는 촉진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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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초 발행일: 1925년 4월 10일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등장인물: 제이 개츠비, 닉 캐러웨이, 데이지 부캐넌, 톰 부캐넌, 머틀 윌슨, 조던 베이커, 마이어 울프쉐임, 조지 윌슨, 트리말키오, Mr 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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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일: 2013년
감독: 배즈 루어먼
흥행수익: 3억 5,100만 달러
원작: 위대한 개츠비
수상: 아카데미 미술상, 아카데미 의상상, AACTA 어워드 남우주연상, 더보기
출연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이 개츠비)
케리 멀리건 (데이지 부캐넌)
토비 매과이어 (닉 캐러웨이)
조엘 에저턴 (톰 부캐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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