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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의 이야기/컨텐츠 파헤치기

[한드] 연애의 발견 3

플라눌라 planula 2021. 2. 2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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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어떤가?

 

한여름에게 사랑은 '자신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주체성이 자신에게 있으므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본인에게서부터 출발하며 끝내는 것도 자신에게서 끝이 난다. 그러므로 한여름이 사랑할 때 그녀는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며 완전히 스며든다. 한여름은 사랑을 위해 기다려주지만 '한 없이' 기다리지는 않는다. 사랑을 위해 참아주지만 '한 없이' 참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건강하게 사랑 안에서 성숙해진다. 그래서 겉으로 강해보이는 강태하도 따뜻한 남하진도 모두 한여름에게 상대가 안된다. 

 

한여름은 자신을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정이 마음껏 뛰놀게 해주는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지만, 종종 관계안에서는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한여름의 의도가 어떻든지간에 그녀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입거나 오해할 수 있다. 분명 한여름의 잘못은 아니다. 자신의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가두려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입었다면 그녀의 마음도 편안하지는 않을 수 밖에 없다. 

 

여름은 자신의 감정레벨과 잘 맞지 않는 태하를 떠나서 남하진과 만난다. 남하진은 천성이 따뜻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이것은 태하가 갖지 않은 엄청난 강점이지만 그렇기에 자신과 동일한 수준의 배려를 원하기도 한다. 그것은 좋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로에게 오해가 생기기 시작할 때는 족쇄가 된다. 자신을 완전히 방치해버린 강태하를 떠나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하게 체크해주는 남하진에게 옮겨간 것이다. 강태하의 연애가 외동의 느낌이었다면 남하진의 연애는 맏이의 느낌이다. 남하진은 보살피고 책임지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나 문제 없는 관계가 없듯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고 갈등 앞에서 침묵하는 사람과는 아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문제는 수면 아래 덮혀있고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다. 

 

 

*

그 일 그만둘 수는 없나?

 

...

 

그만 둘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만 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하는 일은 자세히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방법 없어?

 

미안해. 

 

아니야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자다가 깼는데 좀 놀랐어. 니가 없어서.

나 잘 때 혼자 나가지마. 

부끄러운데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산책하다가 강태하 만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일하면서...

근데 나 너 그렇게 펑펑 우는거 처음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그래,

오늘은 자자.

 

*

남하진은 '착함'이라는 겉껍데기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착하지만 그 착함의 뒷면에는 수 많은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성장 스토리는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보육원에 들어가게됐고 그곳에서 애들에게 놀림받는 어린 여동생(아린)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도 어렵지만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보살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낀다. 하진에게는 누군가를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돌봄'이다. 

 

또한 하진은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주위 환경과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열심히 이해한다. 이해해야지만 갈등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아야지만 그 관계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겁이 많은 것은 이 셋 중 단연코 남하진이다. 사실은 드라마의 전개를 볼 때, 이미 첫화부터 이해하지 못할 일 투성이이고 다른 사람 같으면 아마도 그렇게 오랫동안 견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하진은 견딘다. 상대방이 끊어내주기 전까지는 그는 계속 견디는 것 밖에는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느낀 것. 말도 안되는 그 공기와 그 속에서 펑펑 운 여름을 볼 때 자신이 느낀 감정은 진실이었다. 어떤 것보다도 믿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느낀 불안이었다. 그런데 하진은 자신의 감정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보다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는 여름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진은 불안을 잘 견디지 못한다. 하진은 누군가를 통해 안정감을 찾는 사람이고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진이 보육원에서 한 행동은 그렇기에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하진은 자신의 불안을 해소할 대상으로 아린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거기에 목숨을 걸 만큼 강경하게 대응했고 아린이라는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이라 느꼈다. 사실 아린을 지키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로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있었다. 결국 아린을 지켜냈다. 그런데 자신에게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그는 단박에 자신의 욕망을 따랐다. 아린이 정말 중요했다면 당연히 보육원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하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어쩌면 하진이 느낀 죄책감의 근원은 자신이 보육원을 떠난 것이 아니다. 

 

하진은 그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토록 목숨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 아린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었다는 것을.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진은 자신이 '돌보는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하면서 위안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고 자신이 합리화한 모든 상황이 '진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면서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이런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회라고 부를 수도 있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그 방식이 단지 강태하와 남하진은 반대였을 뿐이다. 어쩌면 어린시절 하진은 스스로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연애의 발견을 보았을 때는 남하진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다. 남하진은 어쨋든 성격이 선량하고 공격하기보다는 보유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강태하에 비해서는 훨씬 덜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연애를 발견을 보면서 한여름이 남하진을 떠나 강태하에게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처음부터 있었다는 걸 이해했다. 한여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태하는 못됐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되는 것을 주저한 적이 없다. 그는 미성숙하기도 하고 감정의 분화가 덜 일어나서 철없는 10대같기도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데 미적거리지 않는다. 또한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성공하거나 꿈을 이루는게 더 중요한 사람이다. 게다가 이후에는 한번의 뼈아픈 헤어짐으로 인해 감정의 성숙이 일어났으니 한여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될 것이다. 

 

반면 남하진은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기 보다는 타인이 존재함으로서 자신이 의미있어지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여름을 돌보아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의지하고 있었다. 여름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계속 자신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따라 흐려지는 남하진이 덜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남하진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끝까지 자신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의견을 구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털어놓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시간동안 여름의 마음은 떠나간다. 

 

*

이제 그만 보자 강태하씨.

여름이 이 일 그만둘거구.

 

그걸 왜 니가 결정해?

너 여름이 묶어두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려고 했는데 더는 안돼. 

일 그만 둘거니까 그렇게 알아.

 

자신 없구나 한여름한테.

넌 여름이한테 안돼.

 

니가 .. 니가 뭘 알아?

 

넌 여름이를 사랑하지만,

여름이가 사랑하는건 여름이 자신이야. 

넌 네 옆에 여름이가 있기만 하면 되지?

근데 ... 여름이는 니 옆에 있는 것 만으로는 만족이 안돼. 누가 옆에 있는다고 행복해지는 애가 아니니까. 너는 여름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네 옆에서 뭘 포기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넌 안돼.

*

 

남하진이 궁지에 몰려,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둘의 관계는 치명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강태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여름에 대해서는 남하진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한여름이 감정에 대한 결핍을 메우려고 할 때는 남하진이 누구보다 나아보였지만 자신이 되기를 원하면서는 강태하가 좋아보이는 것이다. 강태하가 이런 면에서 전략을 아주 잘 세운 것으로 보인다. 

강태하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프로젝트를 주고 네가 잃어버린 꿈을 되찾으라고 격려하고, 단순히 이 안락한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부추긴 것은 한여름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그로인해 한여름은 다시 자신이 되고 싶어졌고 안락한 둥지(하진)에서 빠져나와 혹독한 성장의 길(태하)를 선택해야 할지 말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지난날의 추억, 긍정적인 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는 여름이는 넘어가지 않았다. 감정에 있어서는 한여름이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여름이가 기억한 지난 날의 감정은 진실이었고 태하가 추억을 리뉴얼하게 말할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 조르는 듯 말하는 태하에게 '옛다, 받아라'라는 느낌으로 '그래,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지.'라고 달래준다. 

 

그러나 강태하가 자신의 꿈을 들먹이고 동시에 남하진은 자신의 꿈을 꺾으려한다는 느낌을 받자, 여름이의 갈등은 심화되고 결국 남하진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남하진이 시간을 두고 여름이의 꿈을 같이 찾아주고 응원하며 목공일을 배웠던 것 같은 노력을 더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직종에 종사하며 누구보다 어떻게 해야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잘 아는 강태하를 따라잡으려면 훨씬 더 큰 노력을 해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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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보고 전형적인 '나쁜 남자'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다시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살짝 걱정이 되어 덧붙인다. 드라마의 결말과 상관없이 여름이는 다시 강태하와 만나며 자신의 꿈을 찾고 다시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 예상해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강태하를 만나 스스로 성장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여름이는 둘이어도 혼자인 시간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강태하가 바쁜 시간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그의 도파민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에 한 표. 못 헤어지고 결혼한다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에 또 한 표. 여기서의 유일한 해피엔딩은 한여름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강태하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끝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진행중이기 때문에 여름이의 선택에 응원을 보낸다. 여름이는 아직 자신 스스로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도움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강태하다. 강태하는 연애하기에는 최악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성장형 멘토로서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하진이 스스로의 힘으로 처음 선택한 것, 해외봉사활동을 떠난 것이 의미있게 느껴진다. 주체성을 처음으로 가졌고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므로 가장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보인다. 타인을 돌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하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봉사활동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줄 것이며 단단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린은 하진과 닮은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둘은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생의 의미를 찾아나갈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연애의 발견은 이 문구를 잘 지킨 연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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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발견(2014)

KBS

한여름(정유미), 강태하(에릭), 남하진(성준), 윤솔(김슬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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