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이태원 클라쓰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삶에서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을 채우고자 그들은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목표를 갖고 살아간다.
1. 박새로이 :
박새로이의 가장 큰 원동력은 '분노'이다. 분노는 '억울함'에서 나오고 억울함은 '아마도 자신이 약자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박새로이의 아버지는 '장가'기업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니까 장가에서 강자가 아닌 약자. 장대희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장가기업을 위한 '개' 노릇을 충실히 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직위가 높아져도 이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박새로이는 사회성이 부족했던,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 '순응'하기보다는 '반항'을 택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순응'을 택한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첫 화부터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박새로이를 자극하는 강자가 눈 앞에 나타나고, 박새로이는 자신 안에 있던 반항의 에너지를 그들과 함께 자극받아 내뿜기 시작한다.
2. 조이서 :
박새로이를 만나기 전 조이서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기력'이었다. 머리가 좋고 도덕성은 약한 인물이 세상을 보았을 때, 돈을 벌고자 아둥바둥하는 사람들은 우스워보였을 것이고, 그건 그녀에겐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단지 돈을 벌고 가족을 이루고 죽으려고 이렇게 살아간다고?
조이서는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았다.
한발짝 물러서서 세상을 보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양육강식'의 일들은 본질이 아닌, 단지 동물적인 반복되는 행위로만 보인다. 이걸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머리가 좋아서이고, 머리가 좋음은 삶의 많은 일들이 무의미해보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건 단지 '피상적'으로 세상을 '관찰'했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 속에 뛰어들었을 때의 '예상치 못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은 내가 아는 대로 돌아가지 않고, 안다고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계획은 늘 틀어진다. 그래서 박새로이를 만나기 전 조이서는 '헛똑똑이'였다. 삶을 논리와 생각으로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것을 깨부순 건 '경험주의자' 박새로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이서의 생은 박새로이를 만나면서 무기력에서 변화로 나아갔고, 삶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직접 뛰어든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3. 장근원 :
악의 근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캐릭터를 유지한 인물. 장근원은 가장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새로이와 정반대편에 서서 용기와 두려움의 틈 사이에서 두려움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간 인물.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서 용기내지 못한 인물. 단 한번도 자신의 마음에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은 인물.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맡겨버리고 평생 벌벌 떨었던 인물일 뿐이다.
또한 장근원의 원동력은 장대희 회장과 같이 '결핍'이었다. 그런데 그 결핍의 원인이 달랐다. 장근원은 '애정결핍'이었으므로, 사랑을 받지 못해서 내면에 구멍이 뚫렸다. 두려움을 받지 못할까봐 아버지의 개가 되고 그럼에도 받지 못하자 계속 사랑을 갈구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고, 자신은 힘이 있다고 과시하고 싶어서, 타인을 괴롭히고 두려울 때는 아버지에게 의존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장근원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버지 장대희 역시 '결핍'으로 가득찬 인물이기 때문이다.
악이 악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선과 악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선과 악은 타고난다거나, 그 인물의 성격이라거나, 환경이라는 식으로 아주 쉽게 결론내려버리곤 한다. 그러나 선과 악은 사실 '강함과 약함'에서 갈라진다. 그것은 자신이 끝없이 단련하여 얻을 수 있기도 하고, 타고난 것도 아니며,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누군가가 '나쁘게 말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며 '배려없다'고 해서 (미성숙할 뿐) 악인도 아니다. 강함과 약함을 가르는 것은 '두려움'이다. 자신 안에 두려움을 키우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 선해 보이고 좋아보인다해도 순식간에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악인이 될 수 있고, 자신 안에 용기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인정머리가 없거나 차가워보일지라도 결국엔 선인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 그것이 핵심이다.
4. 오수아 :
오수아는 본질적으로 보면 장근원과 가장 닮은 인물이다. 오수아의 원동력 역시 장근원과 같이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수아는 두려움 때문에 일했고 그 앞에서 자신이 다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오수아의 목표는 그러므로 '안정'이었다. 오수아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는데, 그 자존심 역시도 강자 앞에서는 약해지고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는 전형적인 나약한 인물이었다. 행동이 달랐을 뿐, 장근원과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오수아가 장근원과 비슷한 환경의 재벌집에 태어났다면 장근원과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수아는 장가에서 일하면서 결국 자신의 목표인 '안정'을 이뤘다. 집과 가족이 없던 그녀는 거리에 나 앉게 되지나 않을까, 굶어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일을 했고, 결국 집을 샀다. 그때부터 수아는 어쩌면 진짜 자신만의 성장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5. 장대희 :
장대희의 원동력은 가난에 대한 '결핍'이었다. 결핍을 메우고자 한 행위를 책임감이 지탱했고 그게 결국 그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전형적인 한국적 성공의 방식이기도 하다.
장대희를 보면서 '책임감'을 인물로 표현하면 '장대희' 그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책임감이라는 속성은 결핍이 있을 때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지만, 변화가 필요할 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책임감은 융통성이 없고 하나의 견고한 모습으로만 존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그래서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권위주의'의 모습이 되기 쉽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에는 '권위주의적인 꼰대'가 많은 걸까.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 사회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원동력은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그가 1위 기업이 될 때까지 장대희가 가진 책임감 에너지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기업이 커지고 성공을 하고 난 이후에 그는 자신 안에서 기존의 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갔어야 한다. 장대희는 장근원이나 장근석과 달리 대면에 단단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이 결국 자신을 찍어 누르게 만든 어리석은 인물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2020년 1월 3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방영된 금토드라마이다. 카카오페이지와 다음 웹툰에서 연재되던 조광진의 만화 《이태원 클라쓰》가 원작으로, 2019년 6월에 제작이 발표됐다.
방송 시간: 매주 금, 토 밤 10시 50분 ~ 12시 30분
방송 기간: 2020년 1월 31일 ~ 2020년 3월 21일
방송 횟수: 16부작
방송 분량: 70분
방송 국가: 대한민국
출연자: 박서준(박새로이), 김다미(조이서), 유재명(장대희), 권나라(오수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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