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희 and 장근원, 장근수 부자(父子)
장근원은 한 인간으로 보면 굉장히 안타깝다. 같은 마음으로 장대희 역시 한 인간으로 보면 안타깝다. 또 장근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물림되는 '정서적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서적 결핍은 이들 부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이토록 무섭게 한 인간을 괴롭히고 파괴하고 죽음으로까지 몰고간다.
가난에 대한 결핍
장대희는 '가난'에 대한 결핍을 '부의 성공'으로 보상받았다. 그에게도 애정 결핍이 존재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가난은 더 시급한 사항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적 애정결핍은 치유받지 못했고 그는 결국 그 결핍을 아들들에게 대물림해주었다. 이 드라마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부에 대한 결핍을 보상받는 것보다 사랑에 대한 결핍을 보상받는 것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장대희 회장은 가난에 대한 결핍이 뼈에 새겨졌기 때문에 애정 결핍을 (외부적으로) 갈구하지 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핍된 것은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살펴보지 않는다고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육체적으로 표현하면, 장대희는 심장이 없는 채로 살아가지만, 자신이 이룬 부와 성공을 보면서 회피한다. 자신에게 심장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아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아들들은 아버지에게서 '부'와 함께 '애정결핍'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가난'에서 탈출했고 그 한가지 구멍을 메우고 나서 나머지 한가지를 메울 여력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러므로 한쪽으로 기운 사람이었다. 이것을 인지하기엔 아들 둘은 너무 나약했다. 그들은 결핍된 마음에 대해 끝없이 자신을 수련하거나 갈고 닦지 않고, 외부적인 것들로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애정결핍
어쩌면 장근원은 그런 면에서 최악의 환경을 가진 자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최상의 환경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성장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왜냐하면 '돈은 선을 넘을 만큼 많고 애정은 기아에 허덕일 정도로 없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의 엄청난 빈부격차는 장근원을 갑질의 왕이 되도록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고 (애정적인 면에서) 어리석고 무식하다. 장근원은 자신이 가진 '돈'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없는 '애정'을 채우려고 했다. 사실 이건 전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루트가 아닐까? 그래서 대부분의 갑질하는 재벌 2세가 이런 루트를 따르는 것이 아닐까?
내게 많은 것을 이용해서 없는 것을 채우겠다는 '단순한 심리'.
장근원은 아버지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부와 사랑은 속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같은 방식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장대희가 기업을 이끌어온 방식으로 자식들을 대한 것처럼 말이다. 장대희가 직원들과 자식에게 대한 방식은 똑같다. 개를 대하는 것 같은, 개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결국 필요없어지면 자르거나 버리는 것을 보면, 그에게 직원과 자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조금 더 가치가 있으냐 없으냐의 문제일 뿐이다. '핏줄'이라는 가치는 유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는 강력한 '가치'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특별대우를 해줄뿐.
네, 조이서랑 근수. 제가 잡고 있습니다.
너, 너 이놈.
근수 걱정마세요. 아버지가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장가, 후계로 정한거 아닙니까. 안건듭니다.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설마요. 제정신이겠습니까?
지금 어디야. 애비가 알아야 수습을 할거 아니야.
그거 아세요. 아버지. 전요. 아버지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어요.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요? 박새로이를 처음 만난날? 아니면 뻉소니 사고친날? 그날 새로이는 닭... 닭모가지 비튼 그날 기억하세요. 그일로 전 겨우 견딜 수 있었어요. 박새로이는 닭이다. 닭이나 돼지를 미안한 마음은 필요없다. 그래야 내가 내가 살거같아서. 근데 말이에요. 사실 저 항상 무서웠어요.
근원아...
그런데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아버지 말이 진심으로 와닿아요. 아버지 덕분입니다.
뭐?
이제 다 지긋지긋해요. 고작 개, 돼지 새끼 주제에. 아버지 손으로 아들을 버리게 한 박새로이. 다 끝낼겁니다. 저도 그새끼도. 저 파진 장가 폐창고에 있어요. 말씀 드렸죠? 다 아버지 덕분이라고. 그러니까 절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어요. 아버지 손에 달렸어요. 절 멈추고 싶으면 그때처럼 또 한번 버리시면 돼요. 끊겠습니다.
근원..근원아!
장근원은 장대희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정서적, 내적으로. 부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부리거나 이용, 환심을 사거나, 애정을 얻으려는 노력은 끝없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치지도 않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유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지만, 대부분의 나약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방법이 먹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약한 이중성 때문에, 장근원은 '돈'이라는 도구를 버리지 못한다. 장근원 자체가 자신들에게 벌벌떠는 나약한 사람들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약자의 선택
둘째인 '장근수'는 조금은 다르게 성장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애정을 기대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무기력'한 삶을 선택한다. 이 상태는 '조이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과 비슷한 감정 상태를 가졌지만 근수는 이서를 보면, 조금은 더 삶에 희망을 느끼는 사람. 자신보다 더 똑똑하고 재기발랄한 사람으로 느낀다. 조이서처럼 장근수는 세상에 대해 욕망이 없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다.
장근수가 조이서와 다른 점은, 세상을 두려워하느냐의 여부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두려워하듯 세상을 본다. 장근수는 두려운데다 무기력하기 때문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기를 원한다. 작은 단칸방에 살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일을 하고 누구라도 대체될 수 있는 인물이 되려고 한다. 그는 '실수로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처럼 살아간다.
그런 근수와 이서 앞에 새로이가 나타난다.
비슷한 감정을 가졌지만 애정을 듬뿍받은 이서와 애정을 받지 못한 근수는 완전히 다르게 나아간다. 이서는 삶이 시시했지만 자신에 대한 강력한 자존감을 가졌다. 그러므로 확실히 목표를 정한 다음에는 그것을 향해 돌진해 나갈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근수는 장근원처럼 '애정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의존'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이에게 의존하게 된다. 목표를 위해 전진할 만한 자신감 마저 근수에겐 없다.
근수는 오로지 두려움을 피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장근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이다. 사실 장근원보다 더 나약하고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 장대희가 말했듯,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 그러므로 강자에게 빌붙어 기생해야 하는 삶이 그의 운명이다.
그러나 장근수는 장근원과 다르게 이 운명을 거부한다.
그래서 근수는 꽤 의미있는 인물이다.
장대희에게 아들이 두 명이었기 때문에 이 둘의 비교는 굉장히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엄청난 부를 소유했지만, 그 부를 빼고 나면 그들이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장근수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운명에 언제나 놓이게 된다. 돈을 선택함으로써 타인의 소유물이 되느냐, 아니면 돈을 거부함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삶을 선택하느냐.
장근수는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많지만 어쩌면 가장 방해가 될 그것을 과감히 버린다. 그는 두려움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선택한다. 무보증에 월세 30으로 살아가야 하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인다. 아버지 덕분에 생긴 '엄청난 부'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그랬기에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 그는 유혹에 흔들리고 아버지와 형에게서 배운 가치관에 의지해 살아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기를 선택'했다.
사랑재벌
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사랑은 돈보다 더 상위의 부유함이다. 그것을 운명적으로 많이 가진 사람은 소위 '사랑재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내면적으로 인간을 아주 강하게 만들어주고, 어떤 일이든 가능하게 만들며, 박새로이처럼 용기와 자존감의 근원을 일구어준다. 그러므로 사실 박새로이는 이 드라마에서 사랑에 있어서 가장 타고난 재벌이다.
반대로 장씨 가문의 두 아들은 사랑에 있어서 극빈자들이다. 그러므로 박새로이는 원래부터 가진 게 가장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이는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가 있었고, 강한 내면을 물려주기 위한 환경이 있었으며, 자신을 믿고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이것만큼 풍요로운 것이 있을까? 나는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부유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새로이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그는 '본래의 자신이 되어도 괜찮은' 안정감을 토대로 용기를 키워낼 수 있었다. 분노로 이성을 잃었더라도 자신을 위해 응원해줄 아버지의 영혼에 언제나 자신곁에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닌,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자기확신'을 기를 수 있었다.
건물을 짓는것에 비유하면,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더라도 이미 튼튼하고 평평한 땅이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이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무너져도 '죽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수천번을 넘어져도 일어설 단단한 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보면, 장가 사람들에 대해 연민이 생긴다. 왜냐하면 어린시절 잘못된 애착형성으로 단단한 땅이 형성되지 못하면, 그것을 바로잡는데 남은 세월을 모두 써야 할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장가네 아들들의 땅은 아마도 쓰레기로 가득차서 썩은 냄새를 풍기거나, 완전히 말라비틀어졌거나, 늪지대이거나, 쓸 수 없는 땅이리라.) 땅을 갈아엎어버리는데 온 세월을 보내고 난 뒤, 나무 한그루도 심을 수 없을거라는 두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바로잡는 것을 건너뛰고, 무너질지 모르고 고약하게 냄새나는 땅 위에 건물을 짓는다. 위태한 건물은 얼마 가지 않아 당연히 무너지고, 나무는 밑동이 썩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어린시절만을 탓하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누구든 다시 자신의 땅을 새로 일굴 수 있다. 그건 그 어떤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도 중요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지 않고, 부족한 것에 대해 회피한 것을 '남 탓' 할 수는 없다.
이런 연민을 합리화하며, 자기 성장을 못한 전형적인 캐릭터가 바로 '오수아'다.
장근원은 자신에 대해 인지조차 할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받을 패배자가 되었고, 장근수는 주체성을 찾으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사실은 새로이만큼의 용기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애정적으로 받은게 없기 때문에 (새로이에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면적으로 가난한 사람이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땅을 바로잡는데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비록 평생에 걸쳐 제대로 된 나무 한그루도 심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장근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장근수 인생에서 보면, 이제 한 챕터를 넘긴 정도의 상황에서 끝이 났으므로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그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2020년 1월 31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방영된 금토드라마이다. 카카오페이지와 다음 웹툰에서 연재되던 조광진의 만화 《이태원 클라쓰》가 원작으로, 2019년 6월에 제작이 발표됐다.
방송 시간: 매주 금, 토 밤 10시 50분 ~ 12시 30분
방송 기간: 2020년 1월 31일 ~ 2020년 3월 21일
방송 횟수: 16부작
방송 분량: 70분
방송 국가: 대한민국
출연자: 박서준(박새로이), 김다미(조이서), 유재명(장대희), 권나라(오수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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