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과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그것은 내 맘대로 잘 되지 않고 지칠때가 온다. 가난은 가족들의 목을 조여오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끝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는 딸을 보면 걱정이 된다. 이 가족에서 가장 걱정없는 사람은 아마도 막내 제리가 아닐까.
더 듀렐스는 영화 '캡틴 판타스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현대사회의 룰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그들이 대체제로 찾은 새로운 삶의 방식은 비슷하다. 또한 엄마와 아빠로 대변되는 차이점도 흥미롭다. 더 듀렐스는 '행복'을 소재로 한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도시에서의 삶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행복과 웃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반면 캡틴 판타스틱은 '획일성에 대한 거부'을 소재로 한다.
캡틴 판타스틱에서는 결국 아버지가 강력하게 주장한 교육과 삶의 철학이 꼭 옳기만 한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비슷한 관점에서 듀렐스를 보고 있으면 조금 위태롭고 걱정되는 지점이 있다. 듀렐스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삶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현재의 행복, 즐거움, 웃음 등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즐겁지 않은 공부에 대해서는 조금은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무언가를 배우는 잘못된 방식에서 가해지는 폭력성이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배움으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크다는 것 또한.
캡틴 판타스틱에서는 자연주의 방식으로 강력한 철학을 가지고 공부를 시킨다. 중요한 것은 '옮음'을 증명해내는 것이며 '교육방식'의 혁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했다. 자연주의 방식을 택했지만, 캡틴이 놓친것은 감정이 아니었을까. 둘 모두에서 교육방식의 폭력성과 비합리성을 지적하고, 비슷한 방식의 삶을 택하지만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 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장성한 자식은 자신의 삶의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아직 시즌 2에서 떠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므로, 그 일이 일어날 때 아마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더 듀렐스에서도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에 다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가족의 가치관은 다시 재정립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듀렐스는 가족이 모두 함께 성장해나가는 성장스토리이며, 그곳에 완벽한 삶도 사람도 아무도 없다.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언제나 맞는 답을 내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잊지 않는가. 엄마도 다를 것 없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더 듀렐스는 불완전함을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것에서 탁월하다.
시즌 2는 시즌 1보다 스펙타클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고 질투와 사랑이라는 전형적이면서도 빠질 수 없는 소재가 삶을 뒤흔든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작가 지망생인 래리는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맛본다.
*
그냥 너무 실망했어요.
알아
오랫동안 그 책에 공을 들였잖니
그래서 사기꾼이 된 기분이에요.
그 법석을 떨었는데 별것 아니었어요.
이 책은
화려한 경력의 첫 발걸음일 뿐이야.
*
엄마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낭독행사를 열어주지만, 완전 망... 늙은 노파 한명만이 앉아있다. 그리고 행사는 취소된다. 이 과정에서 래리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세상이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내 좁은 세계를 조금씩 확장해보는 기회. 청춘 특유의 자신감은 이런 계기를 통해 점차 성숙되어 간다.
무엇보다 레슬리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는데, 총을 들고다니다가 사진사가 되었던 레슬리는 급박한 상황에서 산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도 쓸만한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이 일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던져버리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나가기 시작한다. 아기의 세례식날, 레슬리는 아기의 대부 역할을 맡게 되고, 주위 사람들도 '레슬리는 자격이 있어'라며 인정해준다.
*
여기서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절 대부로 삼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 안젤리키가 아버지를 잃게 된다면, 제가 도울 겁니다.
전 제가 무척 불행하고 골칫거리라고 여겼죠.
하지만 아기를 받아낸 날,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보석같은 점들을 보여줄 수 없다. 스스로도 그것이 존재하는지 믿지 못하며, 타인들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기 혐오는 끝없이 자신을 갉아먹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누군가가 골칫거리로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쓸모없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믿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사람들은 레슬리가 골칫거리고 현대사회의 쓸모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쉽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정당한가? 그 기준에 들어맞는 소수의 사람은 쓸모있게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혐오에 빠져서 우울해지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만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의 시스템이 과연 정상인가? 사람들의 가치를 찾아주기 위해 다양한 기회를 주려고 노력을 해도 모든 수요에 맞출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 많은 학교 시스템, 사회 시스템은 그런 노력을 하기는 커녕, 아주 작은 우물을 파 놓고 그곳에 딱 들어맞는 모양만을 인정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그 골칫거리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야 한다.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을 비난하고, 남들이 누군가를 손가락질 하면 자신도 그 속에 끼어서 안심하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리고 사회의 부속품처럼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만의 문이 있다. 자신이 되어가는 문.
그런데 타인은 그 문을 볼 수 없다. 그 문을 찾고 걸어갈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다. 빨리 찾는 사람도 있고 늦게 찾는 사람도 있다. 그 문이 나타날때까지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당연해지면 자신의 문만을 진짜라고 우기기 위해 갖은 편협한 행동을 하게 된다. 더 듀렐스는 그런 사회에서 결국 개인이 파괴되지 않게, 정체성을 인정해주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엄마'라는 핵심 인물을 비롯해, 지역사회로 확장되었을 때의 긍정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타인에 대해 여유가 있는 곳에서는 서로의 가능성과 기회를 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문도 찾지 못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여유가 없다. 타인에 대한 여유가 없으면 쉽게 불행해지고, 그 불행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시즌2(2017)
감독: 스티브 바론, 에드 홀
출연: 킬리 호위스, 조쉬 오코너, 마일로 파커, 컬럼 우드하우스, 데이지 워터스톤, 알렉시스 조고리스, 다니엘 라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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