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삶이 '당신에게 충분히 행복할' 가치를 제공해주는가?
이 물음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도시인들은 시계를 보고 살고 듀렐스의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산다. 거기에 아름다운 풍광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가 '완벽주의'의 덫에 걸려 허우적 댄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드라마의 매력은 첫 장면부터 시작된다. 본머스 1935년.
*
(학교 교장? 선생님과 엄마 루이자)
제리는 수업에 불참하고 쥐한테 먹이를 줬어요.
그래요, 괴롭힘을 당했으니까요. 이 한심한 학교에 입학한 뒤로요.
그 이유가 뭘까요?
왜냐하면...
우리 애는 조금 특별하거든요.
...
교육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야지 누가 때려서 겁주래요?
아이에게 아빠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애한테 반성문을 쓰게 하세요.
우리 애는 자퇴할 거에요. 차라리 원숭이한테 배우는게 낫겠어요.
*
이어서 제리(아이)가 묻는다. "제가 좀 특별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집에 돌아오자 첫째 아들부터 둘째 아들, 셋째 딸까지 줄줄이 사회에서 자신이 겉도는 느낌을 여과없이 드러내는게, 그 대화를 듣고 있으면 모두가 사회부적응자거나 모자라거나 문제가 있어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제가 왜 공인중개사가 되도록 내버려 뒀죠?
저는 작가라고요.
넌 글도 안 쓰잖니, 얘야
그럼 난 모델이겠다
난 전투기 조종사고
그나저나 저 학교 관뒀어요.
거짓말하지 마.
제리도 관뒀잖아요.
어쨋든 교복을 총으로 쏴 버려서...
나도 관둘까봐. 전 머리가 너무 나빠요. 남편감만 찾으면 바로 관둘게요.
대체 다들 왜 그래?
문제가 있다고 도망가면 안 돼.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이자는 결국 이 곳에서 자신의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안다. 또한 자신도 매일 술을 숨겨가며 마시고 있다.
*
난 더는 이렇게 못살겠어.
너희가 어릴 때는 꼭 여행하는 기분이었어. 늘 앞으로 나아갔지. 근데 지금은 걸음을 멈췄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지.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조언을 따르기로 했어.
*
그리고 가족은 그리스의 코르푸 섬으로 떠난다.
누구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나는 건 두려운 일이다. 두려움을 느끼지만 극복하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속으로 한발짝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꼭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꿈을 찾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듀렐스 가족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해외로 나가거나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듀렐스 가족은 아주 낡은 집을 싼값에 빌려 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원없이 누리며 살게 된다. 막내 게리는 자연속에서 곤충과 동물을 관찰하며 자신의 흥미를 키워가고 셋째 마고는 햇빛 아래 썬탠을 즐긴다. 둘째 레슬리는 총을 쏘며 사냥하고, 첫째 래리는 그토록 원하던 글쓰기에 몰입한다.
이 모든 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의 흥미대로 마음이 원하는 일을 강요없이 할 뿐이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재미있고 놀라움이 가득한 삶은, 현대사회가 주입하는대로, 정말 그토록 값어치가 없는 일일까? 그것은 시간낭비이고 질서가 없으며 제멋대로인 엉망진창인 삶일 뿐일까? 체계적이고 틀에 박혀있으며 쓸데없는 수만가지 지식을 외우고 통달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삶은 낭만적인 드라마에 불과할까?
반신반의함을 갖고 이 드라마를 보게 되든, 아니면 단순히 '이런건 드라마에 불과해'하며 시청하든 본인의 자유지만 한번쯤은 사회가 내게 세뇌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는 것'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가?
게리는 아마도 이곳에서 "제가 좀 특별하다는 게 무슨뜻이에요?"의 답을 찾았을 것이다. 엄마에게 물을 필요도. 학교 선생님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걸 아마도 스스로 깨우치지 않았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책임감을 배워나가고 자신다워도 괜찮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 느낌인지를 몸과 마음으로 배웠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무엇을 더 공부하고 싶은지를 절실히 깨닫는 때도 찾아올 것이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장소와 환경이 있다. 인간은 생김새 만큼이나 모두가 다른 것을 원한다. 그러나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 가로세로가 같은 상자속에 들어가서 같은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당연하게도 불행을 초래한다. 이런 불행은 마치 천천히 끓는 물에 들어가 있는 개구리에 비견된다. 개구리는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면서 점점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견딜 수 없는 불행도 익숙해지고,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너무 쉽게 순응하고, 너무 쉽게 익숙해지지 말자.
시즌1(2016)
감독: 스티브 바론, 에드 홀
출연: 킬리 호위스, 조쉬 오코너, 마일로 파커, 컬럼 우드하우스, 데이지 워터스톤, 알렉시스 조고리스, 다니엘 라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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