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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내 인생은 누구도 나 대신 선택해줄 수 없다 ㅡ 설득(Persuasion)

플라눌라 planula 2023. 2. 2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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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은 단순한 스토리와 메세지 안에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다. 

 

사실, 대단한 플롯이나 스토리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캐릭터의 화려함도 없지만, 삶에서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인생도 사실 대단한 드라마나 화려함이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꽤 현실적이면서도 우리들을 닮아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심심해보일 수 있는 듯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모습들 속에서 담백한 매력이 넘친다. 

 

 

영화는 주인공인 '앤'의 독백으로 시작되고 이어진다. 

앤은 자신의 감정을 소설이 마치 그러하듯,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면서 플롯을 전개해나간다. 이런 방식 또한 매우 신선했다. 이 영화는 일기를 읽는 것처럼, 앤과 소통하면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성장하기 위해 몇 번의 작고 큰 실수들을 하는 것처럼, 매우 총명하고 자신의 중심을 잘 잡는 인물인 앤 역시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실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이냐가 중요하다. 

 

앤은 남들의 말에 넘어가 자신의 중심을 놓치고 진정, 내면에서 말하는 소리를 외면한 자신에 대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긴 사람을 여러가지 외적인 조건들 때문에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인간의 실수는, 오늘날 우리들의 실수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또 한탄스러운지! 

 

 

앤의 주위사람들의 속물근성과 넘치는 자기애, 남의 말을 전혀 들을 줄 모르는 자매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보다 조건을 중시하라고 설득하는 사람들 등 현대 우리 사회에 무엇이 덜하고 더할까? 우리들은 배경이 달라진 곳에서 같은 방식의 고민을 하며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 속에서 누군가는 배우고 누군가는 합리화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완벽하지도 않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꾸며지지도 않고, 서로의 불완전함과 때론 견디기 힘들 정도의 오만과 가식을 견디면서 수용해 나가는 모습 속에서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현명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속물적이고 허영심가득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의 말에 속아넘어간 자신을 탓하고, 그들을 탓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영화 내내 전혀 변하지 않았던 앤의 자매들과 아버지, 상속받기 위해 뒤늦게 등장한 윌리엄 엘리엇, 앤트워스 등 모두가 자신의 방식대로 선택하고 살아갔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살아갈 것이고 그 속에서 내가 스스로의 선택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속에 함께 있다면 매우 불편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앤은 그들의 방식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면에서 앤과 꽤 닮아있으면서도 매우 다른 개성을 가진, 윌리엄 엘리엇은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정직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렇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신념은 매우 현실적 ㅡ 다르게 보면 속물적으로 보일 ㅡ 이다. 그는 삶의 우선순위가 확실하다. 돈.

 

그래서 그는 앤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결국 돈의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크게 후회하거나 망설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며 그의 방식이다. 그가 먼 훗날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그가 꽤 괜찮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고 아닌 척 하며 자신이 아닌 것을 선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앤에게 처음 다가갈때도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앤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흥미를 느꼈지만 결론적으로는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았다. (만약 앤이 그가 뒤에서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앤트워스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결혼했다면 이 이야기는 파국과 공포와 조잡한 스토리가 되었겠지만)

 

 

그가 돈보다 사랑을 원하는 어떤 날이 오고 그때 앤이 다시 나타나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이다. 이런면에서 인생의 타이밍, 자신의 성장속도, 그에 맞는 인물들은 늘 나에게는 최적이라는 것을 믿으면 된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없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한번도 스스로 선택해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혼란은 ㅡ 누군가가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고, 나와 성장의 속도가 다르다고, 발 디딘 곳이 다르다고, 신념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틀렸다고 말하는게 '진짜' 문제인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다르고 매일 다르게 성장하고 있고 다른 방식과 방향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한번의 실수를 통해 그 선택이 안겨주는 것이 무엇이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같은 선택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ㅡ 그래서 설령 주위사람들이 모두 그것이 옳다고 말할지라도 ㅡ 나에게는 그게 옳은 선택이 아닐수도 있음을 깨닫는 과정은 꽤 감동적이다.

 

앤의 대모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말한다. "이곳에서 평생 사는게 네 언니에게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너에겐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대모는 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지만' 그것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정말 나를 잘아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나 자식이나 누구라도 그래서 대신 선택해 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혼란에 빠져 그 선택을 남들에게 미루고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늘 최고의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유'를 선사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응원해주고'
그것이 남다르게 보일지라도 '믿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해서 10년을 살고 20년을 산 뒤에, 나는 진정으로 그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산 뒤에 오는 건 오로지 '허무감'뿐이다. 그것이 틀린 것이든 맞는 것이든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섭고 두려워도 말이다. 그래서 앤처럼 처음에는 자신의 주관이 흔들려 실수를 했더라도 그로인해 다시 자신의 선택을 어떤 방향으로 수정해야 할지 안다면 그 또한 멋진 삶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수하지 않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부를 쥐기 위해 사랑을 하고

또 누군가는 진정한 교감만을 찾는다.
누구나 나만의 사랑을 찾을 자격이 있다. 
별난 사랑이라도 해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인생에 훈수두거나 
짝을 정해줄 순 없다는 걸

나는 고생끝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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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득>을 개인적으로 보고 씁니다. 

 

더보기
《설득》은 2022년 공개된 미국의 드라마 영화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설득》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캐리 크래크넬 감독의 데뷔작이며, 다코타 존슨, 코스모 자비스, 헨리 골딩, 니키 아무카버드, 미아 매케나브루스, 리처드 E. 그랜트가 출연했다. 위키백과
개봉일: 2022년 7월 8일
원작: 설득
원작자: 제인 오스틴
제작사: MRC; 비서스 픽처스; 매드 챈스; 포스 앤 트웬티 에이트 필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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