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분도 (되도록이면) 책을 읽고 나서 이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비판은 환영, 의미없는 비난은 사양합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일까.
사실 오만과 편견은 딱 구분 지어 지기보다는 혼합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 어느 부분이 더 강하게 나와있냐 하는 문제이지. 문제는 자신이 오만한지, 편견에 쌓여 있는지는 사실 그 베일을 벗어 던지기까지 알 수가 없어. 특히 이 오류는 자신이 영리하고 똑똑하고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 물론, 타인의 생각에 휩쓸리듯 동요되는 인간들은 논외로 두겠어. 그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할 가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 중요한 점은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남녀가 서로를 오해하는 것이야.
https://youtu.be/uNhKYa_KFaY?si=XkclvbL6CP1GkCTC
Soundtrack - Pride and Prejudice - Meryton Townhall
그럼, 편견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야. 이건 곧, ‘자기 확신이 과도해지고 자신의 분별력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면 ‘편견’이라는 안개가 끼어 버릴 수 있다.’고 해. 고든 올포트는 ‘‘충분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생각’이라고 정의했어. 반대말은 객관성, 중립성 정도가 될거야.
그렇다면 엘리자베스(리지)가 왜 다아시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 되었을까?
첫번째로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어. 다아시는 등장했을 때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지만, 곧 사람들에게서 혐오감을 자아냈어. 이유를 발췌해보면,
*
“다아시 씨는 허스트 부인과 한 번, 빙리 양과 한 번 춤을 추었을 뿐, 다른 여자를 소개 받는 것을 거부했고, 그날 저녁 남은 시간 동안은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끔 자기 일행에게만 말을 걸었다. (중략) 그를 가장 극단적으로 싫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베넷 부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태도가 싫기도 했지만 자기 딸들 중 하나가 그에게 무시당한 탓에 특히 더 분개하게 되었다.”
그리곤 리지는 다아시 씨와 빙리 씨가 하는 말을 듣게 돼.
“저 아가씨 동생 하나가 바로 자네 뒤에 앉아 있는데, 퍽 예쁘게 생겼고, 뭐, 성격도 아주 좋아 보이네. 내 파트너한테 자네 소개를 부탁하지.”
“누구 말이야?”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잠시 엘리자베스를 바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눈길을 거두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군. 그렇지만 내 구미가 동할 만큼 예쁘지는 않아. 그리고 난 지금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들을 우쭐하게 해줄 기분이 아니네. 자넨 돌아가서 파트너의 미소나 즐기라고. 괜히 나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
이런 평가를 듣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 리지는 다아시의 말로 인해 호감을 거두게 되. 또 언니 제인이 ‘타인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성격’ 으로 인해 놓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더욱 더 관찰력을 세우고 깐깐하게 판단하려고 애를 써. 그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 사람은 좋은 면만 있지 않은데, 제인이 사람들의 결점을 보려고 하지 않는 점이 못마땅하기도 했고.
우리가 객관성을 잃을 때는 주로 감정에 휘둘릴 때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듣거나 거부감이 들면, 객관성을 잃곤 하지. 아무리 분별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럴 수 있어.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종종 감정은 이성을 이기니까. 그런 점에서 리지는 다아시에게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감정이 생겨버린 거야. 다아시는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으로 낙인찍혔기에, 혹독한 평가를 내려도 괜찮다고 무의식이 합리화를 한 것이지. 결국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때까지 리지는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두텁게 쌓아갔어. 어쩌면 ‘첫인상’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지도 모르겠어.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이 살아생전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이 ‘첫인상’이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 사실 리지의 입장에서 훨씬 더 설명이 잘 되는 제목이야. 첫인상에서 라벨링이 되어버린 사람은 어떤 짓을 해도 이미지가 잘 바뀌지 않아. 긍정적 편견보다는 부정적 편견이 훨씬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주로 그로 인해 혐오감이 쌓이기 쉬운 거고.
우리도 누군가를 사회적이거나 환경적, 지역적, 취향, 직업, 나이, 인종 등으로 라벨링을 지어버리면 생각보다 거기서 벗어나서 존재자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어려워지곤 하지.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 객관적인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안 좋을지도 모르겠어. 세상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려면 최대한 라벨링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타인을 더 빨리 이해하고 싶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평가하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에서 멀어질 수 있어.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편견을 제거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
이후 다아시는 리지를 보면서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고 대화를 경청한다든가 곁에 있으려고 노력을 해. 그런데도 한번 라벨링 지어져버린 다아시가 어떤 행동을 해도 리지에게는 그저 ‘불쾌한 남자’로 남아있을 뿐이었어. 그 행동이 무엇인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야. 여기서 재미있는 건, 리지의 편견과는 별개로 심지어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도 모를 만큼 다아시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고 점점 사랑을 키워 나갔어. 그 사랑은 리지를 향해 있었지만, 사실 리지와 관계없이 커 나가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해. 다아시는 왜 그랬을까?
이것이 바로 다아시가 가진 오만이었어.
이쯤에서 다아시에 대해 평가하는 ‘오만’이 무엇일까.
‘자만’은 자신 자체를 드높이고 뽐내는 것, ‘교만’은 권력이나 명예에 기대 자신을 뽐내고 드높이는 것, ‘오만’은 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뽐내는 행동, ‘거만’은 행동으로 자신을 뽐내는 것이야. ‘교만’과 ‘자만’은 자신을 뽐내는 원인, ‘거만’과 ‘오만’은 뽐내는 행동 자체라고 할 수 있지. 또 다른 사전적 의미를 보면, 오만의 사전적 의미는 ‘잘난 체하여 방자하다’인데, 방자하다/건방지다는 잘난 체하거나 주제넘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상태에 있다.’고 해. 반대말은 절제와 지혜가 어우러진 신중함이고.
다아시는 스스로를 드높이고 뽐내는 마음이 가득하고,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야.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지.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다아시의 오만에 대해 다아시 스스로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그럴 만하다’고 여겨. 리지의 친구인 샬럿이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 가문이면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 라고 말해. 또한 리지도 동의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의 오만을 쉽게 용서했을 거라고 말하지.
이어 샬럿이 오만과 허영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아주 흥미로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이후에 다아시가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가진 오만과 그 오만이 어떻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는지 볼 수 있어. 그는 제인이 자신의 친구 빙리와 결혼하는 것도 온 힘을 다해 막아내. 오직 자신의 친구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자신의 기준에서 한참 떨어지는 집안의 여자에게 빠져 있는 친구를 ‘구출’하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 게다가 그가 보기엔 제인이 빙리를 좋아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데 다행인지(?) 그는 자신의 친구를 말릴 만큼 상종도 못할 집안의 여자인, 리지를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한 끝에 고백하기에 이르게 돼.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의 오만은 그를 뒤덮고 있었기에 고백하는 순간에도 그는 ‘솔직함이라는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오만을 여지없이 드러내.
‘당신을 사랑하기는 하나, 너의 신분은 열등하다, 그러므로 내가 엄청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선택했다.’ 라는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인 고백이지. 이런 발언을 들으면 사랑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무의식적 욕구에서 비롯된 열병인데, ‘자신을 향한 탄복’의 감정이 더 크다는 느낌이 들어.
이런 감정은 사실 오늘날에도 굉장히 많아. 그때의 영국에서는 돈과 귀족이라는 직위, 신분 같은 것이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면, 현대는 돈이 더 많이 관여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보면 ‘갑질논란’도 이런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인간의 가치를 ‘돈과 물질’이라는 것으로 계급을 나누고 존중심을 그에 맞게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이니까. 인간의 존재가치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생각에서 온전히 벗어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불쾌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곧 내가 가진 지위와 돈에 따라 타인을 다르게 평가하겠다는 말과 같아.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면, 아마도 돈과 물질, 직업, 지위, 집안과 관계없이 상대방의 본질을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한다는 말이야. ‘존재가치로 존귀하다’는 것이지. 그 사람이 똑똑하든 아니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성격이 별로든 아니든, 집안이 잘 살든 못 살든, 인정받는 직업이든 아니든, 소수자이든, 트렌스젠더이든, 동성애자든, 외국인 노동자이든, 매력이 있든 없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말이야. 오만이 가장 손쉽게 기울어지는 인간의 품성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훌륭하다거나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난 사람 ㅡ 뼛속까지 이런 오만적인 생각에 물들어 있지 않은 사람ㅡ 이 있을지 의문이야. 내 생각엔 예수나 부처 정도가 있었을 것 같아. 물론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완벽성을 기준으로 내세웠을 때이고, 보통 사람들은 오만의 정도차이가 있을 거야.
그런데도 사람들이 오만에 대해 굉장한 흠인양 이야기하고 까내리는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가 있을 거지만 ㅡ 가령 도덕성의 의한 분노, 인간 존엄에 대한 중요성 등이 있겠지만 ㅡ 현실적인 시선에선 보았을 때 가장 많은 건, 시기와 질투야. 그래서 위의 샬럿처럼 현실주의자이고 상대방이 동성이 아니라 이성인 경우에는 관용을 베풀어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버리는 것이지. 하지만 상대방이 동성인 경우에는, 대부분이 거기에 대해 굉장히 비판을 해대지. 특히 본인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태어난 경우에 그 시기심은 엄청난 분노가 되어 그들을 비판하는 데 쓰이곤 해. 만약 같은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면, 상대방의 오만에 대해 더 쉽게 용서하곤 하는데, 그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았고 ‘그럴 수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이겠지. 또는 지위와 돈을 가졌다고 해서 도덕성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더 관대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쉽게 생기는 흠이라고 해서 그것이 장점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야. 오만은 오만인 것이고, 그 역시도 일종의 편견이라고도 볼 수 있어. 다아시는 자신이 가진 것들에 기반한 계층적인 편견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고,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 그것을 의심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틀을 깨어보아야 했을 거야. 그 작업을 리지가 해주었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둘의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야. 둘은 쉽게 가질 수 있는 흠을 가지긴 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그것을 여지없이 깰 줄도 알았고 용기 있게 걷어찰 줄도 알았어. 그로 인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반성하고 더 나아질 수도 있었지.
다아시가 가진 오만에 대해 리지가 샬럿처럼 생각했더라면, 아마 다아시 역시 평생토록 자신의 오만을 극복하지 못했을 거야. ‘그건 그럴만하다’고 생각해주고 대우해주었더라면 깰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심지어 다아시는 거절을 당하고도 자신이 오만하게 말했기 때문에 자신을 걷어찼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어. 그 고백의 처음과 끝은 모두 자신의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어. 자신에게서 시작해서 자신으로 끝나는 고백이지.
그런데 거기서 리지는 아주 명확하게 말해줘.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지금 당장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너의 근본적인 오만함에 대한 혐오라고.’ 자신이 당연히 거부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다아시는 큰 충격에 빠지지. 어쩌면 다아시는 시대상에 맞는 여러 겹의 생각층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어. 그것은 그의 입장에선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었지. 다아시는 그 시대에 가장 평범하고 당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었어.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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