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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원데이(2020) - 1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

플라눌라 planula 2025. 1. 8.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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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원데이는 새벽의 파르스름한 공기를 느끼게 하는 첫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술에 취한 대학졸업식. 휘청거리는 청춘들. 그곳에서 타오르는 욕망의 씨앗들. 얼굴이 새파랗게 보이는 어둑어둑한 골목에서 서로를 보았을 때,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랐다. 

새벽공기와 어색함

 

엠마는 소심하고 수줍은 문학소녀이고 덱스터는 자유분방한 바람둥이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기에, 어쩌면 그들이 서로에 대해 품은 강렬한 호기심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곧 서로에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기에.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이지만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세상에 이제 발을 내딛은 청춘이 다른 청춘과 어떻게 영향을 주며 살아갈까? 영화는 꿈과 일, 사랑과 욕망, 가족과 어른이 되어가는 것들이 너무 무겁지 않게 잘 버무려져 있다. 

 

처음 이 영화를 보면, 엠마의 질기고 안타까운 짝사랑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다음에 이 영화를 보면, 그들의 꿈과 일과 시간이 보인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청춘이 막을 내리고 나면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보석들이 세상에 나온다. 

그 다음에 이 영화를 보면,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겪어내야 할 고통과 즐거움이 보인다. 또 그것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진정한 사랑과 인간의 본성에 어떻게 가깝게 만들어가는지가 보인다. 

 

엠마와 덱스터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가족처럼 서로의 곁에 머물며 꿈과 사랑을 응원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하는지를 보는 건 굉장히 흥미롭다. '현재를 즐기라, 카르페디엠'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덱스터와 '규칙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엠마는 서로에게 한계와 틀을 깨주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좋은 인생 동료가 되어준다. 

잘생'김' 묻은 청년 덱스터

 

특히, 덱스터(짐 스터게스)의 얼굴 변화는 인생의 굴곡을 아주 잘 나타내준다. 그는 청춘의 싱그러움과 발랄함이 묻어나는 이미지에서 - 이혼을 하고 고단한 얼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건 - 그토록 빛나던 청춘 또한 유한하지 않음을 잘 드러내주는 중요한 포인트다. 상반되는 귀엽고 찌질한?! 대학생에서 우아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엠마(앤 해서웨이)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지만 말이다. 이 두명의 배우가 영화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영화를 몇번이고 보게되는 중요한 기쁨이기도 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려는 엠마를 다독이고 휴가를 권하는 이 장면은 어쩌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서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무너질 때, 진심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권해줄 수 있는 친구는 - 하룻밤의 원나잇 대상의 섹스파트너보다 미묘한 신경전으로 질긴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 이성간 우정이라는 특별한 관계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드디어 설렘 미묘 긴장속에서 이어지는 특별한 휴가!

싱그러운 두 사람

 

진지하기만 하게 살아가는 여자와 플러팅 고수의 여행! 이들은 서로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부분들을 계속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성장 파트너가 아닐까? 엠마는 성적으로 보수적이고, 이것이 완전히 정반대인 덱스터로부터 그녀가 느끼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가 내 손에 잡히지 않아 짜증나지만 그런 덱스터처럼 나 또한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마음. 실천할 용기는 없지만 그를 보면서 느끼는 해방감. 그를 마음으로 오랫동안 그리고 곁에 있으면서 그녀 또한 사랑에서 두려워하는 '섹스'를 바라볼 용기를 서서히 갖게 되어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매력으로 느끼는 건, 사실은 그 모습이 내 안에 깊이 억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원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즐길 수 없고 이것이 타인을 통해 대리만족이 될 때 큰 매력이 된다. 

 

첫 장면에서 엠마가 덱스터와 섹스를 하기 직전, 덱스터에게 '난 이런 순간에 늘 울거나 웃어버린다. 중간이면 좋을텐데'라고 말한 것은 그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신의 취약성을 솔직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후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엠마가 덱스터에게 결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덱스터는 처음엔 답답하기만한 엠마에게 '그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좀 질러봐. 카르페디엠 몰라?'라고 하면서 엠마를 부추긴다. 그의 부추김에 엠마는 용기를 내어 '나체수영'을 시도한다. 덱스터는 진지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엠마 앞에서 자신도 마음을 드러내보이려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진실된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도망가버린다. 엠마 핑계를 대면서. '네가 특별하고 뭔가 다르길 원할텐데 난 자신이 없어서'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덱스터가 가진 취약성이다. 

 

후에 그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때 밝혀지지만, 부자는 '진지한 대화'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그런 대화엔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저 '사랑하는 죽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처럼 견뎌보라고 말한다. 덱스터가 자라온 환경과 버무려진 유전적 특성으로 그는 진실된 마음에 다가가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것이 엠마와 덱스터가 20년간이나 이어진 강력한 인연의 이유다. 서로가 결코 스스로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지점을 서로릍 통해 보고, 자극받고, 용기를 내보려고 시도도 해본다. 자신의 깊은 취약성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에 그들에겐 1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거고. 

 

그리고 영화는 참 유머러스한 포인트를 넣어준다. 

엠마를 답답하다면서 부추기고 나체수영을 권했던 덱스터에게만 사고가 벌어진다. 누군가 명품인 덱스터의 옷을 가져가버린다. 싸구려 원피스인 엠마의 옷은 건드리지 않고서. 그리고 덱스터는 그 순간 나체로 범인을 잡으려고 돌아다니면서 수치심이 다수의 사람들앞에서 까발려지고 허세속에서 분노한다. 그는 엠마의 고백따위는 빠르게 한쪽으로 치워두고 '명품'에 집착하면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씩씩거린다.

 

이 장면은 덱스터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교묘하게 예언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는 보이는 것 - 명품, 멋진 여자들, 화려한 쇼 - 등에 엄청나게 집착하면서 그것이 전부인 양 살아가고 그것이 '수치'그 자체임을 스스로는 모르지만 그를 보는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나체로 돌아다니면서 씩씩대는 그를 보고 웃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진심을 보지 않고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 점점 전락한다. 

 

그리고 사고가 난 밤, 엠마는 잠든 그에게 "에르메스 팬티를 반드시 찾아줄게"라며 반의적인 표현을 한다. 자신의 용기어린 진심을 묵살하고 '명품'을 도둑맞았다고 떠들어대는 그에게 실망과 허탈감을 느꼈고, 그것을 일종의 희화화적이고 엠마적인 말로 위로한다. 엠마는 '내 마음을 좀 봐줘'라고 말하는 대신, 포기와 실망감을 억누르고 그의 가벼움을 진지하게 대하는 듯한 말로 중얼거리면서 가슴앓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또한 이 여행은 엠마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룰에 집착'하는 듯한 강박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덱스터를 통해서 자신이 정한 규칙을 모두 스스로 어김으로써 틀에 갇힌 자신을 해방시켰다. 

 

덱스터에게 완전히 마음을 접어야한다는 걸 깨달은 엠마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각자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덱스터에게는 이전에 이미 예언된 대로 점점 삶의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병. 그리고 엠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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