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ever you explore, it will lead you to your own path."

"당신이 탐구하는 모든 것이 결국 당신만의 길로 이끌 것이다."

미스터리의 바다/심연(深淵)의 항해

무의식과 꿈

플라눌라 planula 2020. 1. 1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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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수업을 듣고 꿈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러다가 또 잊고 지내면 희미하게 잊히는 꿈들이 대부분인데 유독 나의 머리를 때리듯, 강하게 남는 꿈들이 있다. 그 꿈은 마치 경고를 하듯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든다거나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에 남아있는 경우이다. 꿈 수업을 들을 때, 강사님이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특성을 살펴보고 거기에 나의 '특수한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면 더 이해될 거라고 하셨다. 

 

내가 내 삶의 소명이라고 생각한 꿈(작업)을 포기하려고 할 때, 두 번의 강렬한 꿈을 꾸었다. 커다란 컨테이너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굉장한 공포를 느꼈고 다음에는 포크레인이 나를 위협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참 동안 생각했다. 깨고 나서도 공포에 떨고 있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꿈 속에서 주어진 메시지 '너는 기억해야 해. 다음 세대까지도.'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소명이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아닐 거라,라고 거부하려고 했을 때 꿈은 말했다. 잊지 말라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의미를 가질 일이 무엇인지. 

 

또한 가장 자주 꾸는 꿈 중에는 쫒기거나 비열한 남자, 무서운 남자가 자주 나온다. 단순히 나의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해소되지 않은 남성성, 곧 아니무스가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는 걸. 유독 흥미로웠던 부분인데, 우리는 일생동안 내면의 파트너와 관계 맺으며 분투를 벌인다. 이를 융은 '개성화의 걸작(masterpiece of individuation)'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나타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사랑의 본질이다. 결국 우리가 항상 갈망하면서도 가장 어려워하는 '사랑'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철학자는 철학적으로 사랑을 분석해왔고 심리학자는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왔다. 모든 이야기에서 나름의 합리성이 있지만, 꿈을 통해 무의식과 심리학을 적절히 분석하고 이해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어쩌면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사랑을 정의할 때 '그가 사랑하는 것이 욕망인지 아닌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욕망적으로 놓고 보자면 너무 의식화되어 있어서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사랑은 그보다 훨씬 무의식에 가깝다. 투사와 무의식. 

 

아무리 현실적으로 능력이 좋고 훌륭해 보이더라도 사랑을 할 때는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 사람의 무의식과 성장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무의식을 잘 다루고 성장시키는 것은 현실에서 부유해지기 위해 하는 노력과 비슷하게,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 인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완벽할 수 없기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현실적인 부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내면이 빈약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에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내면에도 투자하지 않는 경우도 훨씬 많다. 하지만 내면에만 투자하는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사실상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얻어지는 대가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별 소용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어느 정도 갖춰놓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할 때 나타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특히 내면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이 다른 양상이었다.

남성은 자신의 아니마와 관계맺기를 실패하면 '무드에 사로잡힌다'. 사람을 들뜨게 하거나 가라앉게 만든다. 극단적인 경우 자기 팽창이나 우울로 간다. 사무실에서 종일 긴장하고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가 퇴근하면 목청이 높아지고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무드는 왜소해진 남자 심리에 비아그라 역할을 한다. 이 상태로 그는 겉으로는 제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하고 불면의 밤이 지속된다. 이것을 억누르다보니 밖으로는 예기치 않게 분노가 폭발하거나 과도하게 예민해서 매사 짜증을 부린다. 가부장제 남성들의 전형적인 고질병, 충동적인 감정 조절이다. 

 

여성이 내면의 남성, 아니무스의 주술에 빠질 경우에는 다르게 다타난다. 내면에 사악한 남자 파트너가 있다. 이들의 꿈에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는데 소매를 보니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이 마구 자라난다. 또 누군가 팔을 낚아채는데 그 얼굴이 사악하게 변하고 내 팔은 화상을 입어 녹아내린다. 강도가 밖에서 어슬렁거린다. 테러리스트, 강간범, 청부살인업자, 사이코패스, 감옥 간수, 파괴적인 군인, 독재자 등이다. 꿈에서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놓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 잡는 방법은 깨어나서,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의식세계에 붙들어 두는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시달리는 여성들의 특징을 보면 '이럴까, 저럴까?' 고민을 하느라 결정을 못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보낸 나날 동안 숨어 지낸 여성의 경우 내 안의 '아니무스'로 인해 이런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억압되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남성이 항상, 이상한 남자에게로 당신을 이끌고, 해치는 남자에게로 이끌어간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힘'이다. 건강한 아니무스가 작동하면 빠르게 판단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결단을 내린다.

 

나쁜 남자를 만나는 여성들, 

건강한 아니무스를 만나지 못한 것은 운명이다. 받아들이자. 그러나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 개척하고 성장해나갈 때, 그렇지 않았던 사람보다 더 깊고 진한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부터 자신의 아니무스를 건강하게 형성해 나가기 위해 후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내면의 사악한 남성을 어떻게 의식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반대로 건강한 아니무스를 어릴 때부터 잘 형성해 온 사람은 세상을 내것처럼 편안하게 느끼며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면 된다. 

 

꿈은 그 길을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책 <나의 꿈 사용법> by 고혜경 / 한겨레출판을 개인적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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